배고픈 유전자 물만 먹어도 살찌는 유전자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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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,202회 작성일 05-08-06 14:03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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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전거 페달을 계속 밟아야만 작동하는 TV가 발명됐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. 그 발명가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 한 비만치료기를 발명했다고 자랑이 대단했다. 좀 더 날씬한 몸 매를 위해서든, 정상 체중에 도달하기 위해서든 살을 빼기 위 한 노력과 투자는 현대인의 보편적 문화로 자리 잡았다. 살 빼 기 열풍은 현대인의 집단적 강박 현상이다.

운동과 식이요법 정도는 양반이다. 심각한 부작용과 후유증이 생길지 모른다는 사실도 살을 뺄 수 있다는 희망을 꺾지는 못한 다. ‘죽어도 좋다! 살만 뺄 수 있다면….’ 그럼에도 매일매 일 우리의 신경을 정말로 곤두세우는 것은 우리를 살찌게 만드 는 것들이 곳곳에 늘어서 있다는 사실이다.



하지만 살과의 전쟁에 뛰어들어 보면 금세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. 왜 누구는 많이 먹어도 날씬하기만 한데 왜 나는 물만 먹 고 자도 뚱뚱한가 말이다.



비만은 단지 의지박약의 문제이므로 습관만 고치면 얼마든지 해 결될 수 있다는 통념은, 누구보다 투철한 정신력으로 다이어트 를 수없이 반복해 왔던 우리의 수많은 뚱보들에겐 아무런 위안 도 주지 못한다. 도대체 비만은 왜 오는 것일까.



전 세계 성인의 30% 정도가 비만에 시달리고 있으며 비만 관련 제약시장 규모가 1조달러에 이르는 지금, 비만의 정체를 밝히 는 일만큼 화급한 일도 드물 것이다. 미국 보스턴대 교수이자 과학저널리즘 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비만에 관한 진실을 찾 아 여행을 떠난다. 물론 유전자가 문자 그대로 배고플 리는 없 다. 식욕을 조절하는 생화학 메커니즘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부 르는 애칭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.



지난 10여년 동안 전 세계의 과학자들은 이 비만 유전자를 찾 기 위해 끈질긴 노력을 해왔다. 그렇게 해서 찾아낸 것이 이른 바 ‘렙틴’ 유전자다.



이 유전자는 쓰레기통을 뒤지고 언 물고기를 갉아먹는 등 대식 (大食) 행동을 보이던 어떤 남매를 유전학적으로 연구하는 과정 에서 발견됐다. 흥분한 과학자들은 체내의 렙틴 농도가 비만을 결정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연구를 거듭했으나, 불행히도 비만 의 유전적 메커니즘은 훨씬 더 복잡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.



이런 결과에 가장 크게 실망한 이는 과학자도, 엄청난 돈을 투 자한 제약회사도 아닐 것이다. 죽음보다도 더 싫은 비만의 고통 에서 해방되고 싶은 수억명의 현대인일 것이다.



저자는 유전학 연구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비만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. 게으름과 탐욕의 상징이었던 비만이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‘질병’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. 하 지만 유전적 요소가 있다고 해서 인간을 살찌우는 온갖 환경들 이 비만과 상관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. 저자도 자본주의 상품 의 유입으로 섬 전체의 사람들이 몇 년 사이에 급속히 뚱뚱해 진 태평양 중서부의 열대섬 코스라에의 예를 들면서 환경의 중 요성을 강조한다.



새해에 다시 한번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자 의지를 불태우고 있 는 사람이라면 지피지기(知彼知己)를 위해서라도 연말에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.



장대익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박사과정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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