잃어버린 도시, 서울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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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,718회 작성일 04-04-29 16:24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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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긍식 서울대 법대 교수

서울은 어떤 도시인가? 인구 1,000만이 밀집해 사는 거대도시이 다. 그리고 고층빌딩과 최신기계가 있는 첨단도시이며, 월드컵 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세계도시이다. 그러나 우리에게는 또 다 른 무엇이 있다. 바로 우리의 역사이며 삶이다.



화석화한 역사적 건축물



20여년 전 서울에 처음 와서 버스로 고가도로를 지나다가 깜짝 놀랐다. 아래에 교과서에서 본 독립문이, 독립을 위해 청나라의 사신을 영접하던 모화관을 헐고 지었다는 그 독립문이 거대한 콘 크리트 구조물 아래에, 원래 자리는 자동차에 내어주고 천덕꾸러 기처럼 서있었다. 그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.



그 충격이 우리의 역사적 현재이다. 서울은 600여년 동안 한반도 의 수도였다. 지금 그 역사의 묵향은 찾을 수 없다. 국보 제1호 숭례문(崇禮門)은 그 이름조차 빼앗긴 채 남대문으로 고층빌딩 에 포위된 채 밤낮으로 경적소리에 시달리며 메케한 숨만 내쉬 고 있다. 보물 제1호 흥인문(興仁門)도 다를 바 없다. 역사 속 에 빠져들기 위해서는 고궁으로 박물관으로 가야 한다. 아니면 인사동으로. 삶 속에는 역사와 전통,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 다. 다만 화석만이 지난날의 광휘를 희미하게 드러낼 뿐이다. 박 제만이 우리들 맞이하고 있다.



1392년 개성에서 건국한 조선은 2년 후인 1394년 한양, 서울로 천도(遷都)하였다. 정도전(鄭道傳)이 중심이 되어 경복궁과 종 묘, 사직을 세우고 풍수사상에 따라 청계천을 만드는 등 수도의 모습을 갖추었다. 서울에는 관리, 양반과 양인과 상인 등 많은 사람이 서로의 삶을 어울러 도시를 만들었다. 이런 모습은 몇 차 례의 전란을 겪었지만 크게 변하지 않고 지속되었다. 이런 서울 은 경제개발을 하면서 크게 달라졌다. 옛 시가지의 모습은 하나 둘 사라지고 거기에는 도로가 났다. 그리고 옹기종기 살아가던 집들이 있던 자리에는 거대한 빌딩들이 버티고 서서 웅장한 자태 를 뽐내었다. 역사의 장중미는 저 너머로 사라졌다.



연전 일본 쿄오토(京都)에 갔을 때 놀랐다. 현대도시에 맞지 않 게 옛 것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. 킨카쿠지(金閣寺) 등 전통 사찰이 있는 지역뿐 아니라 도심 한가운데도 옛 가옥과 현대식 건물이 나란히 있었다. 물론 2차대전의 전화(戰禍)를 입지 않은 쿄오토와 몇 차례나 불탄 서울을 그대로 대비할 수는 없지만, 쿄 오토에서는 옛 사람의 여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. 일본에서 는 쿄오토의 역사성을 보존하기 위해 법령을 정비하여 건물의 신 축과 개량을 억제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.



근래 서울의 옛 모습을 되찾으려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. 경복 궁을 비롯한 고궁을 복원하고 있다. 청계고가도로를 헐고 물이 흐르는 청계천을 복원하려는 계획도 추진되고 있다. 그러나 이것 만으로는 부족하다. 이 청사진에는 서울이라는 역사의 공간에서 희로애락을 나누며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. 역사 와 자연 속에서 움직이는 우리가 없는 복원은 다시 화석 하나를 더할 뿐이지 그 이상 이하 아무 것도 아니다.



강북지역을 재개발한다고 한다. 신도시처럼 고층아파트로 하늘 과 자연경관을 가리는 마천루만 잔뜩 세워질까 두렵다. 600년 역 사의 모습을 되찾는 개발이 되어야 한다. 전통과 첨단이 어우러 진 그런 시가지로 탄생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나만의 몽상일까? 일부만이라도 역사와 전통과 대화하고 사색에 잠길 수 있는 고즈 넉한 거리를 만들어야 한다.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다시는 그 런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. 위정자와 시민들이 결단할 때이다.



사람과 역사 어울릴 수 있어야



역사와 조화를 이루며 개발을 해야 한다. 그리고 긴 호흡으로 하 자.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식민지의 상징인 조선총독부 청사 를 철거했다. 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. 그런데 아직도 박 물관 건립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. 역사는 반복된다. 그러나 피 할 수도 있다. 또 서울이 개발되던 4, 50년 전보다는 사정이 훨 씬 좋다. 철저한 계획과 이를 끝까지 관철하려는 정책 의지가 필 요하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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