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알아봅시다]國都 서울의 풍수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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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,055회 작성일 04-05-11 19:07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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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선 이 태조는 왕위에 오르자 즉시 고려의 남경, 즉 한양으로 천도할 계획을 발표했다. 그것은 우리나라 풍수의 시조로 불리 는 도선국사가 남 긴 ‘도선비기’에 ‘계왕자이이도어한양(繼王者李而都於漢陽)-다음의 왕은 이씨이며, 한양에 도읍을 정한다’ 라는 한양도읍설에 따른 것이다.

한양 천도는 역성혁명으로 왕조를 세운 이성계가 국도를 옮겨 나라의 기틀을 새롭게 하고, 민심을 얻을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추진됐다.



또 한 개성 의 지기는 이미 쇠하였다는 지기쇠왕설(地氣衰旺說)도 한몫했 다 . 그러나 당시 풍수지리에 통달한 권중화(權仲和)가 계룡산 아래의 신도 안 터를 답사하고는 그곳의 지형을 그림으로 그려 이성계에 바쳤다.



무 학대사와 함께 신도안을 직접 찾아간 이 성계는 길지란 생각이 들어 한양 천도를 포기하고 신도안에 새로 운 궁궐을 짓도록 했다. 그런데 1년을 조 금 넘게 공사를 했을 때 갑자기 하륜(河崙)이 공사를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렸다.



“도읍은 마땅히 나라의 중앙에 있어야 될 터인데, 계룡산은 남 쪽에 치 우쳐서 동면 서면 북면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. 또한 계룡산의 땅 은 산은 건방(乾方)에서 오고, 물은 손방(巽方)으로 흘러가니, 이것은 송나라 호순신(胡舜申)에 따르면 ‘물 이 장생(長生)을 파(破)하여 쇠패 (衰敗)가 곧 닥치는 땅’이므 로 도읍을 건설하는 데 적당하지 못합니다 .” 이성계는 곧 고 려 왕조 여러 능의 길흉을 호순신의 이론에 맞춰 조사하 라고 영 을 내렸는데, 놀랍게도 후손들의 길흉이 모두 딱 들어맞았다.



이에 크게 놀란 이성계는 심효생을 계룡산에 보내어 새 도읍의 공사를 그만두게 하고, 하륜에게는 서운관에 보관된 풍수책을 모 두 열람하게 한 다음 새 도읍지를 찾아보도록 했다. 그 결과 다 시 한양이 조선의 도읍지 로 선택됐다.



박인호 기자/ihpark@ned.co.kr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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