國都 지기쇠왕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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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,106회 작성일 04-05-11 18:47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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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기쇠왕설이란 땅이 가진 생명력(지기 또는 생기)은 시간의 흐 름 또는 그 땅의 주인에 따라 왕성해지거나 또는 쇠약해진다는 뜻이다. 즉, 땅의 기운이 왕성할 때면 부귀와 번영을 누리지만 반대로 땅의 기운이 쇠약해 지면 재앙과 불행이 닥쳐온다고 보 는 풍수적 견해다.

지기쇠왕설은 주로 도읍지를 정하거나 또는 천도(遷都)에 따른 명분으 로 이용됐다. 우리 역사상 지기쇠왕설을 들어 도읍지를 옮기자는 주장은 먼저 고려 인종 때(1135년) ‘묘청의 난’에서 찾을 수 있다.



묘청은 이자겸의 난으로 개경(개성) 귀족의 세력이 약화되자 권 력의 중 심을 개경에서 서경(평양)으로 옮기고자 했다. 그는 “개경의 지덕(地德 )은 이미 쇠하였고 서경의 지덕에는 왕기가 있다”며 ‘서경천도론’을 주장했다. 물론 기득권을 지키려는 개경 귀족 김부식 등에 의해 평정됐 지만, 이 묘청의 난은 지기 쇠왕설을 이용한 대표적인 정권 다툼이었다.



두 번째 사례는 조선의 도읍지를 한양으로 정한 것이다. 역성 혁 명에 성공한 이성계는 권력 기반이 약한 개성보다는 새 국가의 위용에 맞는 새 도읍지를 찾았다. 그 당시 ‘개성의 지기는 이 미 쇠하였다. 개성은 신하가 임금을 폐하는 망국의 터’라는 도 참설이 널리 퍼져 있었다. 이 에 명분을 얻은 이태조는 새 도읍 지를 물색했고, 처음에는 신도안(계룡 산 주변)을 지목했다가 하 륜이 이기풍수의 핵심인 호순신의 ‘지리신법 ’의 이론을 들어 반대하자 한양으로 옮겼다.



세 번째 지기쇠왕론은 광해군 때의 풍수사였던 이의신에 의해 제 기됐다 . 그는 “임진왜란과 반란이 잇따르고 사방의 산이 붉게 물듦은 한양의 지기가 쇠해진 결과”라며 “도읍을 교하(현 파 주 교하)로 옮기자”고 주장했다. 이 주장은 왕의 동의까지 얻었 으나 결국 이정구와 이항복의 강력한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 다.



박인호 기자/ihpark@ned.co.kr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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