행정수도 이전과 지역발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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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,960회 작성일 04-05-11 19:17본문
며칠 전 같은 학교 여교수들과 점심 식사를 같이 했다. 가벼운 만남이니만큼 수다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. 학생들 교육 문제에 서 자녀 교육 문제로, 가정 대소사의 여러 일들, 골다공증을 예 방하려면 운동이 좋다는 건강 문제, 어떤 할인 매장에는 어떤 물 건이 좋다는 생활 정보에 이르기까지 오고가는 수다 속에 그 유 익함이 끝이 없었다. 그러던 중 이야기는 행정 수도 이전 문제 로 옮아갔다.
직장과 거주지가 대전이니만큼 이 화제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 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. 그러자 곧 말투들이 신중해지고 말수가 줄기 시작했다. 서울에 비해 워낙 집값이 싸다보니 대부분 평수 큰 아파트를 장만하고 있었고 개중에는 노후를 위해 공주 가는 길에 전원주택지를 사 둔 사람도 있었다. 수도 이전 발표 이후 집값이 눈에 띄게 올랐고 매물도 자취를 감춘 만큼 개인적으로 이익을 볼 사안이기에 함부로 입을 열 처지가 못 되었던 것이 다.
그러나 우리에게는 그까짓 땅값 정도가 아닌 불편한 경험들이 무 수하게 많이 있었다. 우리 학교를 비롯해서 대덕 연구단지 사람 중에는 원래 거주지가 서울이었거나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 들의 비율이 매우 높다. 연구단지 조성을 위해 서울에 있었던 많 은 연구소가 이쪽으로 옮겨졌고 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연히 이쪽으로 내려오게 되었다.
유성 벌판에 인위적으로 조성된 연구단지에 갑자기 내려오게 된 ‘서울 사람’들은 일찍이 서울에서 겪지 못했던 온갖 불편들을 감내해야 했다. 연구 당사자들이야 연구소에서 밤낮으로 일한다 치더라도 그 가족들은 낯선 곳에서 많이 불편해했다. 우선 편의 시설이 부족했다. 대형 쇼핑센터는 물론 없었고 의료 시설, 문 화 시설도 없었다. 대전 시내에까지 나간다 하더라도 서울에 비 해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.
가장 큰 문제는 자녀 교육 부분이었다. 같은 서울 시내에서도 강 북에서 강남으로 전입하는 판이니 미세한 교육 수준의 차이일지 라도 연구단지 학부모들이 행여 자녀들이 불이익을 당할까봐 가 슴 졸이는 것은 욕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.
때문에 재능과 상관없이 과학 고등학교나 외국어 고등학교에 자 녀를 입학시키거나 아예 서울로 올려보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했 다. 자신들이 받은 만큼의 교육적 혜택을 자녀들에게 주고싶어하 는 것이야 인지상정이니 이 학벌중심 사회에서 대학은 기를 쓰 고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명문 대학에 보내는 풍속을 안 따를 수 없어 대개가 두 집 살림이었다.
그 뿐인가! 연구 자료나 전문 서적을 구하려 해도 애시당초 서울 로 가는 것이 속 편하고 중요 세미나나 회의는 대부분 서울에서 열린다. 학교에서 대전역까지 변변한 대중교통 수단이 없으니 택 시는 기본이고 아침에 기차 타고 가서 두어 군데 일을 본 후 마 지막 열차를 타고 한밤중에 대전역에 도착하면 처량한 생각이 든 다.
이런 상황이니 연구 단지와 대전시의 직접적이고 발전적인 교류 가 부족하고 연구단지가 대전시에 떠있는 섬처럼 고립된다. 마찬 가지로 행정 수도가 이전할 때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많 은 공무원과 그 가족들이 이런 불편을 겪으면서 행정 수도 이전 의 효과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.
수도를 이전할 때 행정 기능만 단독적으로 가져와서 해결될 문제 가 아니다. 교육 시설, 문화 시설, 생활 시설 등이 서울 못지 않 게 충족되어야 한다. 자기 자녀들을 그곳 도시에서 대학까지 교 육시켜도 자기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면서 평생을 살 수 있게 해 야 하고 서울에서 상영되는 영화나 연극, 음악회도 그곳에서 동 시에 이루어져야 한다. 생활 편의 시설들도 서울만큼 갖추어서 그곳에 있어도 서울 살던 것 못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.
결국 행정 수도 이전의 효과가 제대로 발현되려면 다양한 영역에 서 진정한 지방화 시대가 와야 하는 것이다. 그렇지 않다면 근무 하는 공무원 가족들만 이산 가족이 되고 행정부와 교류해야 하 는 여러 관련기관들이 그 도시에 지부를 따로 두어 오고 가는 불 편만 가중될 것이다.
(최혜실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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